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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 제39대 서울특별시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https://tpzjs4.tistory.com/ 2024. 10. 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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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吳世勳)은 1961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태어났다. 현재 제39대 서울특별시장이자,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으로서의 재임 경험을 지니고 있다. 오세훈은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위원장과 C40 도시기후리더십그룹 부의장을 맡아 도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주도하고 있으며, 오세훈의 관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하고 있다. 오세훈의 본관은 해주 오씨로, 오세훈의 가족은 아버지 오범환, 어머니 사문화, 여동생 오세현, 배우자 송현옥, 그리고 두 자녀로 이루어져 있다. 오세훈의 학력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며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쌓았다. 오세훈은 또한 육군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중위로 복무하며 국가에 기여한 경험이 있다. 정치적으로 오세훈은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서울 강남구 을에서 선출되었다. 그 후,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며 서울시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현재 오세훈은 제38·39대 서울특별시장을 맡고 있으며,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오세훈은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오세훈의 리더십은 서울시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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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생애 개요

 

1. 정계 입문 이전

 

1.1. 학창 시절  

오세훈은 1961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태어났다. 오세훈의 아버지 오범환과 어머니 청주 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오세훈은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도를 겪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서 힘든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비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고, 자주 전학을 해야 했다. 서울미동국민학교와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일고등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고, 197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정학부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로 편입학하여 사법시험을 준비하였고,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8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같은 해 학사장교로 육군 헌병 소위에 임관하여 국군보안사령부에서 복무하였고, 1991년 중위로 전역하였다.

 

1.2. 법조인 경력  

그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이후 예일대학교 로스쿨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하고 귀국하여 민사소송법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변호사로서의 주목을 받은 사건은 1993년 일조권 소송 사건으로, 인천 경남아파트 주민들이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그림자에 가려 일조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오세훈 변호사는 대기업을 상대로 13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이는 그를 '환경 전문 변호사'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조권 소송 이후 오세훈은 환경운동연합의 창립에 참여하고, 1992년부터 5년간 시민상담실 실장으로 활동하며 환경운동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1995년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의원과 1997년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감사,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의 법률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법조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방송 활동 또한 병행하여 MBC 아나운서 손석희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방송 프로그램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에 출연하였고, 여러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2.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아 서울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 5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환경과 노동 문제를 다루었고, 이명박 서울시장 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오세훈은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인 '오세훈 3법'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 법안은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결국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오세훈은 다음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의정활동 잔여금을 환경재단과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하였다.

 

3.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는 민선 최연소 시장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오세훈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서울시 통합 민원 서비스인 다산콜센터를 설립하고, 수도권 통합 대중 교통 환승제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서울의 대기 질 개선을 위한 여러 환경 정책을 추진하며 성과를 올렸다. 오세훈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였고,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으로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이어갔다.

 

3.1. 무상급식 주민투표  

한명숙과의 초접전 끝에 재선에 성공한 후, 오세훈은 무상급식안에 대해 주민투표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투표 참여율이 저조하여 무상급식안은 부결되었고, 이에 오세훈은 시장직에서 사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오세훈의 정치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4. 서울특별시장 사퇴 이후  

시장직에서 사퇴한 후 오세훈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하였다. 이후 로펌 고문변호사로 재직하며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와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활동하였다. 2016년 총선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언론과의 접촉을 자제하며 정치적 야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냈다. 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하였다.

 

5. 20대 총선 출마  

2016년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였고, 치열한 경선 끝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초기 여론조사에서는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선거 막판에는 정세균 후보에게 밀리는 결과로 낙선하게 되었다. 이는 오세훈이 정치적 야인으로서의 시간을 더 연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오세훈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정치 및 환경 분야에서의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오세훈의 활동은 여러 가지 성과와 논란을 낳았으며, 현재까지도 정치적 야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세훈: 21대 총선 출마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오세훈은 광진구 을에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서울의 대표적인 험지인 광진에서 여당의 당대표를 지낸 추미애를 꺾으면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구의 현역 의원인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직을 맡으면서 불출마가 확정되었고, 대신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정치 신인 고민정과 맞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선거 과정에서 오세훈은 아파트 경비원과 청소원들에게 명절마다 총 120만 원의 격려금을 지급한 혐의로 고발되었으나, 이에 대해 법률가로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거운동 중 대진연 측의 방해를 받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 47.8% 대 50.4%로 석패하였다. 선거전 초반, 오세훈은 접전 우위로 점쳐졌으나, 차명진과 김대호 등의 막말 논란으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고, 여론조사에서 접전 열세로 이어졌다.

 

오세훈의 낙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광진구 을은 미래통합당 입장에서 험지로 평가되며, 추미애와 친문의 지원을 받은 고민정과의 2.5% 차이로 석패한 것은 선전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정치 신인 상대의 패배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오세훈은 당 내외에서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 단순히 선전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했다.

낙선 이후 오세훈은 블로그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견제한 후보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은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총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오세훈은 범야권 대선주자 중 3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2021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세훈은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오세훈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고 야당 후보들과의 원탁회의를 제안하며 정책 공약으로 서민 감세, 사교육 퇴치 등을 내세웠다. 이후, 재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한 오세훈은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되었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18.32% 포인트 차이로 압도하며 당선되었다. 이는 오세훈이 서울시장직에서 10년 만에 복귀하는 순간이었으며, 오세훈의 정치 경력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오세훈은 이번 승리를 통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보수정당의 암흑기를 탈출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드러내며, 민주당의 높은 지지가 과거와는 정반대의 민심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청년층이 오세훈에게 큰 지지를 보내며,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오세훈은 이 과정을 통해 서울시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였고, 당내에서 여러 정치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를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4선 당선의 의미와 향후 전망

 

2022년 4월 11일, 오세훈 후보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단수 공천을 받았다. 이후 송영길 후보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두 후보 간의 대결이 성사되었고, 5월 12일 공식 후보 등록을 통해 본격적인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 후보는 서울시의 행정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후보 등록과 동시에 시장 직무를 정지하고, 조인동 행정1부시장 체제로 약 3주간 서울시를 운영했다. 5월 14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선거캠프 개소식은 오세훈의 선거 전략과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였다.

 

여론조사에서는 오 후보가 58.7%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특히 20대 및 30대 남성에서 70%에 가까운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예측은 실제로 현실화되었고, 8회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59.05%의 득표율로 송영길 후보를 19.82%p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특히, 서울 425개의 행정동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진정한 '완승'을 거두었다.

또한, 국민의힘의 구청장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7명이 당선되면서, 오세훈 시장의 시정 운영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의회에서 국민의힘이 정원의 2/3 이상인 76석을 차지함에 따라 향후 시정 운영의 안정성이 더욱 높아졌다.

 

출구조사 결과, 오세훈 후보는 50대 남성, 20대 여성, 40대 여성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승리를 거두며, 본인의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입증하였다. 이는 오세훈이 향후 헌정 사상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으로서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본인은 "99% 서울시장을 다시 하고 싶다"며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차지함에 따라, 민주당과의 협치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오세훈 시장은 총선 이후 야당 당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치적 연합과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오세훈 후보의 4선 당선은 서울 정치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향후 오세훈의 정책 방향과 민주당과의 협치 여부가 서울시의 발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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