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원(徐熙媛, 쉬시위안, Barbie Hsu)은 1976년 10월 6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태어난 대만의 배우이자 가수다. 예명 대S(大S)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1994년 '十分鐘的戀愛'로 데뷔해 연예계에 입문했다. 사립화강예술학교 희극과를 졸업한 후 다양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뛰어난 외모와 개성 있는 연기로 아시아 전역에서 팬층을 확보했다. 키 163cm, 체중 44kg으로 알려졌고, 불교를 신봉하였다.
가족으로는 어머니 황춘메이, 언니 서희한(徐熙嫻), 여동생 서희제(徐熙娣, 1978년생)가 있으며, 여동생 역시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2022년 2월 8일 한국 가수 구준엽과 재혼해 화제를 모았고, 전 남편인 왕샤오페이와의 사이에서 딸 왕시웨(2014년생), 아들 왕시린(2016년생)을 두었다. 서희원은 가족 간의 유대가 깊은 인물로 대중 앞에서도 가족 사랑을 자주 드러내며 사랑받았다.
2025년 2월 2일, 일본 도쿄도에서 향년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대만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 큰 충격을 안겼으며, 생전의 활약과 따뜻한 성품을 추억하는 팬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소속사는 타이핑엔터테인먼트(太平娛樂)였으며, 그녀는 생애 동안 다양한 예술 활동과 인간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칼럼] 시대의 얼굴, 시대의 이별 – 서희원이라는 이름이 남긴 것
2025년 2월 3일, 한 시대의 아이콘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대만의 국민 배우 서희원, 많은 이들에게는 ‘대S(大S)’로 불렸던 그녀의 부고는 마치 오래된 영화를 끝까지 보다가 마지막 자막을 보는 순간처럼 먹먹함을 남겼다. 그녀는 연예계에서의 삶, 가족과의 이야기, 사랑과 이별, 논란과 화해까지, 모든 삶의 파편을 하나하나 조용히 기록한 배우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소녀의 시작, ASOS라는 이름의 추억
1994년, 여동생 쉬시디(서희제)와 함께 결성한 듀오 ASOS는 단순한 걸그룹 이상의 의미였다. ‘Adult Sisters of Shu’, 성인 자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면서도 당시 10대 팬들에게는 그저 친근한 ‘대S’, ‘소S’ 자매로 불리며 중화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녀의 웃음에는 카메라를 이끄는 힘이 있었고, 언니와 동생이 함께한 무대에는 가족적인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 연예계라는 전장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가족”이라는 중심축을 놓치지 않았다.
쉬시디가 지금도 MC로 활약하는 반면, 서희원은 점차 카메라 뒤로 물러났다. 건강 악화와 가족 중심의 삶을 택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는 방송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도, 늘 대중의 기억 속에서 퇴색되지 않는 이미지였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대만 드라마 ‘유성화원’에서 주인공 산차이 역을 맡으며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 팬들에게는 ‘대만판 금잔디’로 기억되며, 그녀는 한류의 이전 세대에 이미 ‘역류한 한류’라는 상징이기도 했다.
연기자로서의 변주, 그리고 도발
연기자로 전향한 이후 서희원의 행보는 더욱 흥미로웠다. 2003년에는 드라마판 ‘천녀유혼’에서 섭소천을 연기했고, 2010년에는 오우삼 감독의 영화 ‘검우강호’에서 킬러 옥 역으로 등장했다. 살벌한 배역, 도발적인 대사, 광기 어린 눈빛—청순가련의 대명사로 불리던 그녀에게는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역할조차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소화해냈다. 일회성의 도전이 아닌, 배우로서의 깊이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이 역할 속에서 그녀는 단지 ‘예쁜 배우’가 아닌 ‘이야기를 지닌 배우’로 거듭났다. 결혼, 이혼, 재혼, 그리고 논란까지.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스크립트로 쓰고 연기하는 배우였다. 카메라 밖의 삶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무대였고, 우리는 그 무대를 보는 관객이었다.
사랑, 그 두 개의 장면
서희원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아마 두 번의 결혼일 것이다. 첫 번째는 중국의 부호 왕샤오페이와의 번개 같은 결혼. 그들은 부유하고 화려한 셀럽 부부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양안관계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의 폐쇄적 조치, 문화적 차이, 그리고 반복된 언론 보도가 둘의 관계를 침식시켰다. 결국 이혼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그러나 더 극적인 반전은 두 번째 결혼이었다. 23년 전 연인이었던 한국 가수 구준엽과의 재회는, 아시아 전역에 ‘운명’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했다. 구준엽은 서희원의 전화번호를 20년 넘게 지니고 있었고, 서희원은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얼굴도 못 본 채 영상통화로 청혼을 하고, 결혼 신고서를 띄운 이 사랑은 2022년 최고의 러브스토리이자, SNS와 유튜브가 넘실대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이별의 정치학
그러나 과거는 그리 쉽게 침묵하지 않는다. 구준엽과의 재혼 이후, 전 남편 왕샤오페이 측과의 갈등은 가십 이상의 긴장을 만들어냈다. 양육비 분쟁, 문자 메시지 공개, 정신질환 의혹, 마약 복용설까지 이어지는 폭로전은 대중의 피로를 부추기면서도, 동시에 여성 스타의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가혹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지 다시 보여주는 사례였다.
서희원은 끝까지 침묵하거나, 단호하게 자신을 변호했다. “가장 힘든 건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는 고백은 화려한 삶의 이면을 드러냈고, 그녀의 아픔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구준엽은 그러한 그녀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내가 평생 지킬 사람”이라는 그의 말은 연예인의 언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다짐처럼 들렸다.
마지막 계절, 조용한 퇴장
2025년 2월, 그녀는 일본에서 가족 여행 중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새해를 맞으며 떠난 여행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그녀의 소식은 대만뿐 아니라 중화권, 한국, 일본 팬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 그녀의 동생 쉬시디는 “가장 사랑하고 착한 언니”라고 말하며 눈물로 소식을 전했다.
서희원의 삶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깊게 움직였다. 강렬한 폭발 없이, 점점이 남긴 자국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스캔들이 아닌 서사로, 논란이 아닌 감정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마지막 계절 앞에서 우리는 말없이 그녀의 이름을 되뇌인다.
서희원.
그 이름은 이제 한 사람을 넘어, 시대의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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